비비언니 생일 축전으로 쓴 리퀘, 히바야마.
Dear. Beebee님
Happy birthday!
ㅡHibari X Yamamoto : 착한아이의 거짓말쟁이 놀이
上
교사 뒤편, 작달만한 정원 끝의 소각장에서 약간의 탄 냄새가 났다. 선도부와 선생들의 눈을 피해 몰래 피운 담배의 불씨가 제대로 꺼지지 않고, 제 몸 아래 있는 작은 종이 쪼가리를 태웠다.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마름모꼴의 철망아래, 작은 이젤 위에 놓인 판넬이 눈에 들어온다. 까만 유성매직으로 휘갈겨 쓴 선도부의 경고문구. 그것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에 착한 사람만 보이는 임금님의 옷 같은 존재였고, 선도부가 요주의 하는 인물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판넬을 마냥 투명 취급한 것은 아니었다. 판넬과 이젤을 치워보면 녹색 철망에 사람이 몸을 웅크렸을 때 드나들 수 있을 만한 구멍이 나있다. 그들은 그 틈을 통해 뒷산을 넘어 시내로 나갔다, 돌아오곤 했다.
야마모토는 몸을 낮춰 철망 밖으로 빠져나갔다. 억지로 뜯겨진 철망의 첨단이 낡고 녹슬어 긁히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는 것에 어느덧 익숙해진 참이었다. 학교와 이어진 뒷산은 그 동안 수많은 걸음이 있었다는 것 마냥 본래 사람이 다닐 곳이 아닌 곳에 길이 나있었다. 그 길을 걷다 문득 잘못 얻어맞은 정강이가 아파서 멈췄다, 걸었다, 반복해야했다. 게다가 찬바람이 불 때면 터져서 피가 맺혀 굳은 입가의 상처가 시리고 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가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이 길을 걷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시내로 이어지는 길 말고, 딱 둘만이 알고 있는 샛길로 빠지면 번개라도 맞았는지, 새카맣게 타서 쓰러진 커다란 나무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무 아래에 가끔 매점에서 인기가 있는 빵이나, 우유가 놓여있을 때가 있고, 가끔은 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이 있을 때가 있었다. 정체모를 서류가 쓰레기마냥 쌓여있을 때라던가, 정말 먹다 버린 쓰레기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런 자잘한 것들과 이 장소의 주인은, 이곳을 알고 있는 야마모토를 제외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이다. 여학생들과 일부 남학생에게 인기가 좋기로 유명한 학생회장.
히바리 쿄야—.
야마모토는 매일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시간 때를 맞추지 못하면 만날 수 없는 그를 만나게 되는 날은 야마모토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오늘도 그런 특별한 날이다. 그는 주로 나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종이 한 장과 눈씨름을 하고 있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을 자그마한 책 한권을 읽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고 멍하니 발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주변 경관이 모두 그에게 분위기를 맞춰주듯 살랑거린다.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그의 까만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나뭇잎에 맞춰 제 몸체를 가누지 못한다. 어깨에 걸친 가쿠란 조차도 작게 펄럭거렸다. 먼발치에서부터 그를 발견하면, 숨을 깊게 들이마셔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거슬리지 않게 발밑에 바스락대는 나뭇가지조차 신경 쓰며 나무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 뒤로는 몇 분이고, 몇 십 분이고 말이 오가는 법이 없다. 야마모토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을 때 대답이 돌아온 적이 없어서,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꾹 다물고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러다 지금 시간 때의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히바리는 말없이 돌아갔다. 그게 예삿일이고, 대부분은 인사 한 번 건네지 않는다. 그와 야마모토의 사이가 설핏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곰살궂은 것도 아니었다. 같은 반인 것도 아니고, 무언가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대화를 나누는 자체에 괴리감이 있다. 그러나 오늘이 조금 달랐던 것은 정말로, 정말로 특별한 날이었다, 라는 것이다.
“질리지도 않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 지 몇 가지 막연히 정리해봤다. 얻어맞아서 지저분한 몰골로 매일매일 찾아오는 것. 찾아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정말 살아 있는 연유에 대한 것일지도. 넌 그렇게 살면서 질리지도 않느냐. 하는 뭐, 그런.
“널 괴롭히는 건 나름 재밌나보지?”
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재밌으니까, 그러는 것이 맞다. 야마모토는 잘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서 어렴풋 떠오르는 자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히바리는 딱히 그에게 대답을 바라고 질문 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히바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약해빠진 초식동물. 너는 그런 놈들과 달라서.”
“·······.”
“그래서 더 재밌는 모양이야?”
히바리의 거뭇한 눈동자가 소려하게 빛났다. 표정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지금 기분이 어떤지에 대한 것을 읽는 게 어렵다. 그럴 땐 거짓말쟁이가 될 필요가 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때, 상대방의 기분을 절대로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이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여러 말들. 야마모토는 머리를 굴렸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가, 더 머리가 맑고 깨끗한 것 같아서, 여느 때보다 더 진짜와 비슷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난 나약해. 그러니까, 사자의 밑에서 하이에나를 피하고 있을 뿐이야. 건드리지 못하는 사자의 곁에서 하이에나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잖아. 그러니까, 나도 재밌어. 그들이 재밌으면 나도 재밌는 거야.
“놀이란 건 그런 거잖아. 내가 좀 불리해져야 더 스릴 있는 거지.”
야마모토의 말에 그가 처음으로 웃었다. 전혀 즐겁지 않은 눈으로 웃어서 야마모토의 마음이 내려앉았다.
下
복부를 채였다. 위장이 심하게 뒤틀려서 구역질이 치밀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엎어져서 신음하는 야마모토의 뺨에 실내와 발이 빠르게 날아와 강타했다. 이를 꽉 깨물고 있지 않았더라면, 한 개 정도는 빠지지 않았을 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피가 되어 줄줄 흘렀다. 평소보다 더 짙은 폭행은 그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짐작케 했다.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선도부로 신고를 했다. 선도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있는 이들이 누군가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다고. 그들은 물론 야마모토의 짓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아니다. 그들의 괴롭힘이 죽을 만큼 힘들었더라면, 진작 벗어나고도 남았으나, 일부러 붙들고 늘어진 쪽은 야마모토였다. 그런 그가 일부러 선도부를 찾아 일일이 신고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해명할 기회조자 추지 않고, 몰아붙였다. 어떻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하더라도, 네 채신을 잘했어야지 하며 때릴 사람들이었다. 꺼릴 것 없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그들은 야마모토의 셔츠를 어깨 밑까지 죽 잡아당겼다. 짧아진 담배의 시커먼 부분을 쇄골 밑의 여린 살갗에 가져다대며, 낄낄 웃어댔다. 그것을 시작으로 바로 지금 전까지의 모든 괴롭힘은 전초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드디어 야마모토가 마음속 깊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 말했던 것처럼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재미있나?”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평소에는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던 히바리가 창문에 턱을 괴고 서서 말했다. 그들이 피우던 담배가 두 개 정도 꺼졌을 무렵이었는데, 그들은 어깨를 퍼드득 거릴 정도로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척, 태연한 척 가장하여 웃으며 웬일이냐, 학생회장. 하고 뻔뻔스레 묻는다. 평소에도 몇 번 조우한 적 있어, 학생회장은 자신들에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파악한 그들은 지금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서 놀랐을 뿐이지,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야생 맹수 같은 그의 눈과 마주한 그들의 안쪽 셔츠가 얼마나 축축하게 젖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자신들의 물음에는 대답도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히바리 때문에 그들은 저들끼리 어쩔 줄 몰라 하며 속닥거렸다. 그러더니,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바닥에 흙먼지를 묻히고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던 야마모토도 그제 서야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아파서 조금의 움직임도 괴롭다. 제일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아마도 담배의 끝이 닿았던 부분이다. 뺨이 심하게 부풀어 있을 것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야마모토는 아야야, 작게 신음하며 히바리에게로 몇 발자국 다가섰다.
“응. 재밌어. 그 질문 나한테 한 거 맞지?”
야마모토가 옅게 웃어 보였다. 시퍼렇게 멍이 든 눈이 반으로 휘어져 웃어, 조금 못생겨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사실은 사자고 하이에나고 상관없다. 그런 건 거짓말. 조금 더 강한 사람에게 조금 더 괴롭힘 받고 싶을 뿐. 어쩌면 히바리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쟁이.”
히바리의 얄쌍하고 하얀 손이 야마모토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꽉 조여드는 옷에 숨이 막혔지만, 그보다도 더 숨을 쉴 수 없게 만든 것은 물어뜯을 듯 닿은 그의 입술에 있었다. 야마모토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동그랗게 뜨였다. 입 안쪽이 완전히 터져 너덜거리는 상처부위를 혀로 끈질기게 핥아댔다. 아파서 멀어지는 야마모토의 멱살을 더욱 꺽지게 끌어당기며 맞부딪히는 입술을 비비적댔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숨을 다 뱉어내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익을 만큼 몰아붙여진 뒤에, 야마모토의 무릎이 꺾였다. 그의 손에서 놓아진 야마모토가 털썩 주저앉은 뒤에, 입가에 묻은 핏물을 핥아내며 당황해 흔들리는 야마모토의 눈을 직시했다.
“나한테 괴롭힘 당하고 싶잖아, 너.”
아. 들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