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08. 31 아오미네 다이키의 생일을 기념하여 모인 3인 글 합작입니다.
+ 모브(=엑스트라)의 1인칭시점, 작가시점 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 화청을 중심으로한 아오미네 오른쪽 성향의 글입니다.
입학 W. 판토라
내 일과는 밤새 쿰쿰한 냄새가 밴 차렵이불 밖으로 몸을 끌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반듯하게 이불을 펼쳐놓고 보니 발에 꿴 수면 양말 한 짝이 자는 새에 벗겨져 나가 똬리를 틀고 머리맡에 굴러다닌다. 우습게도 잠버릇이 나쁜 탓이다. 중력을 무시하고 솟구친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발견하자 작은 감탄사가 튀어나간다. 전날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참인데 막상 잠들고 나니 최선을 다해 잔 것 같은 모양새다. 덕분에 안색은 나쁘지 않다. 칫솔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사각사각 어금니를 문지르며 오늘 일정에 대해 상기한다. 학생 신분을 가진 자의 하루라고 해봐야 등교를 하고, 수업을 듣고, 하교하는 것을 비롯해 부 활동에 참여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것조차 특별한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오늘은 분명 특별한 날이다.
보름 전 사이즈를 재느라 입어본 것을 빼곤 거의 새것인 빳빳한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본다. 나는 앞으로 20센치는 더 클 예정이라며 호언장담했고 염려하는 어머니께 박박 우겨 산 큰 사이즈의 교복을 찬찬히 훑었다. 긴 소매와 바짓단이 어색해서 방바닥에 발을 구르곤 집 밖을 나선다. 배웅하는 어머니의 앞에선 아닌 척했지만, 가슴이 조금 벅차오르고 마는 오늘은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다.
“어어, 나도 긴장돼.”
등굣길에 호들갑스러운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을 했던 이 친구는 그새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정말 부질없게도 아마 이 친구의 꿈같은 고교데뷔는 일주일 내에 머리를 다시 까맣게 물들이는 것으로 끝날지 모른다. 고작 산화제로 멜라닌을 끄집어내고 노란 물을 채운 것뿐이었지만, 나름대로 파격적이었던 친구의 일탈이 있던 뒤라 나 또한 고교데뷔의 환상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내 수준에 맞춰 친구들과 같은 고등학교를 지망한다거나, 멋을 내본다든가, 여자 친구를 사귀어본다든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많았지만, 나는 굳이 이 근방에서 편차 높은 진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렀다. 솔직한 말로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을 넓히고 싶다는 게 이유인데 나는 결코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내 입학이 확인되자마자 다들 기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할 땐 하는 사나이라며 콧대를 세우고 떵떵댔는데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녀 공학인 학교에 진학해 여자 친구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눈치 없는 친구에게서 오늘도 어김없이 악담은 이어진다.
[그런 명문고를 다닌다면 3년 내내 괴롭기만 할걸.]
“공부하려고 온 건데, 어쩔 수 없지.”
[고등학교까지 사내놈들만 득실득실한 남고에 가고 싶냐.]
“공부랑 상관없잖아!”
[으 동정 냄새.]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른다. 즐거울지 누가 알아! 대꾸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발을 쿵쿵 굴렀다. 그저 온통 머릿속에 놀 거 아니면 여자밖에 안 들어선. 이런 녀석을 친구라고 끼고 다녔던 것이 열불이 났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려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았다며 징징대는 목소리에 인내했다. 적어도 교문 앞까지는 통화해주자는 내 아량에 감동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짹짹대는 수화기에 대고 몰래 하품을 하며 걷다가 누군가와 퍽, 부딪친다. 전봇대라도 되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퍼드득 몸을 비트는데 장신의 남자가 나를 돌아본다. 그 순간 숨이 멎었다. 폐부에 들어찬 공기마저 당황해 도로 나올 생각을 못 하고 우왕좌왕이다. 소년만화에서 등장하곤 하는 허세남이 건달과 맞닥뜨렸을 때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가슴이 철렁하고 손발에 땀이 맺히도록 쫄았다. 190? 아니 거의 2m는 될 것 같다. 내 키는 올해로 165다. 압도적인 키와 덩치 차이로 주눅이 들어 목을 잔뜩 움츠리고 눈치를 살핀다. 수화기 너머로 여전히 눈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대답을 독촉하지만, 나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거의 마네키네코마냥 굳어있자 남자에게서 기어코 목소리가 뚝 떨어진다.
“앞을 보고 걸어야지, 신입생.”
그러더니 같이 걷던 남자와 툭탁거리며 열 걸음 앞에 있던 교문에 들어선다. 그들을 알아본 다른 학생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까지 말없이 지켜보며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똑똑히 눈가에 새겼던 남자의 미소를 떠올리며 숨을 죽인다. 웃는 얼굴이라고는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은 험상궂은 인상이 반듯하게 펼쳐지면서 눈가가 조금 접혔다. 입꼬리 끝은 조금 말려 올라갔으나, 광대는 심하게 튀어나오지 않는 그런 얼굴이었다. 웃으면 부실공사 현장의 허물어진 건물마냥 얼굴이 무너지곤 하는 나와 다르게 웃는 얼굴이 놀랍도록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 사소한 행동에 설레고 마는 순정만화 속의 여주인공이 된 심정이다.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던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기어코 나는 내 성 정체성을 자각하고 만 것인가.”
[무슨 소리야, 그게?]
“학교생활 즐거울 것 같다고.”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학교 안에 들어섰다. 내가 교문 근처에서 마주친 남자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건 입학식이 시작된 후, 앞으로 1학년 담임을 맡을 선생님들의 소개를 받을 때였다. 1학년 B반. 우리 반 담임은 산뜻한 금발 머리에 은색 피어스를 한 이 근방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미남형의 남자였는데 나는 우리 반 담임보다도 바로 옆 반 담임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는 채였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까만 피부와 형광등에 반사되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머리카락이 시선을 잡아끈다. 학생들의 어처구니를 앗아간 젊은 이사장부터 선생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평생 볼 미남을 전부 다 본 것 같은데 유난히 눈이 가는 건 저 사람이다. 대거의 학생들이 교실로 이동하는 동안 그는 전혀 웃음기 없는 표정이 지루하게 늘어져 있다. 그것도 잠시 교문 근처에서 마주쳤을 때 함께였던 사람이 그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귓속말하자 다시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생각보다 잘 웃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자, 교실로 이동할 게요—!”
어쩐지 텐션 높은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이동해 번호순대로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 뒤에는 간단한 학교 안내와 선생님의 소개가 있었고 잠깐 쉬는 시간을 받았을 때 나는 복도를 가르지는 두 인영을 바라본다. 그저 친한 동료로 치부했던 내가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는 건 그로부터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윤리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과 사귄다. 사귀는 사이이다. 아마도 연인이다. 이 학교에 다닌 지 약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1학년들 사이에서 돈 괴소문이다. 남의 연애사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학 때 마주쳤던 ‘그’ 윤리 선생님과 ‘그’ 영어 선생님이라 생각하니 수업을 받는 도중에조차 간간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두 사람의 조심성 없는 언동에서 비롯되었다.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식사도 함께 커피도 함께 하물며 출근도 퇴근도 모두 비슷한 시간대인 것까지 그저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라 확증할 만한 증거는 같은 위치의 선생님 중 하나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었는데 우리 반에서도 가장 행동력 있는 놈 하나가 덜컥 체육 선생님을 붙들었다.
“쿠로콧치 선생님. 아오미네 선생님이랑 카가미 선생님 사귀는 거예요?”
그 순간 다들 숨을 죽이고 체육 선생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그렇게 티를 내는데 몰랐나요?”
그럼 그렇지. 다들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주억댔고 질문을 던진 녀석은 절망하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영어 선생님의 잘생김을 논하며 자신이 그를 이길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을 스물한 가지 정도 늘어놓더니 으흐흑, 우는 소리를 낸다.
“내 사랑은 끝났다.”
윤리 선생님의 인기를 실감한 건 그때쯤이다.
며칠 뒤, 교실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이미 학교 전체가 뒤집혔을 지도 모른다. 만우절이라 하면, 몇몇은 제 친구를 골려 먹는다고 짓궂은 장난질을 준비하곤 하지만, 내 기준상 모두가 나서서 즐기고 그러는 대규모 이벤트는 아니었다. 간혹 학급 전체가 나서서 만우절 장난을 하는 경우를 인터넷 영상으로 접하긴 했다. 코멘트 란이나 조회 수로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보는 사람마저도 유쾌하게 만들었던 영상의 당사자들은 어땠을지 궁금하긴 해도 내가 직접 주도해 나서서 벌일 만큼의 중요한 이벤트는 아니다. 게다가 우리 반은 나를 포함해 누군가 주도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만우절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면 특별한 것 없는 만우절 아침을 맞았다. 그런 학생들을 제쳐두고 선생님들이 나설 줄은 전날 밤 메밀국수를 먹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시작은 HR 시간에 나타난 담임부터다.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고 교실에 들어오는 료타쌤의 옷차림에 반 학생들이 모두 쩍, 굳었다. 저건 아무리 봐도 우리 학교 교복이다.
“쌤 그게 뭐예요.”
“오늘 만우절이잖아여. 료타쌤의 서프라이즈!”
교복 물려주기로 빈 교실에 쌓인 교복 중 하나를 주워 입기라도 했는지 키가 큰 료타쌤에겐 소매가 조금 짧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 길게 잘빠진 몸이 내심 부러워서 속으로 조금 툴툴댔다. 차라리 어울리기라도 했다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료타쌤의 교복 차림은 성인 아이돌이 교복 브랜드 광고 촬영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뿐이다. 정말 그럴듯한 예다. 그저 만우절을 핑계로 교복이 입고 싶었을 게 분명한 료타쌤은 온종일 저 차림으로 돌아다닐 예정이라며 떵떵거렸다. 흥미를 잃은 반 녀석들은 아무도 료타쌤에게 관심을 둬 주지 않았다.
“키세!”
그때 앞문이 거칠게 열리고 아오미네 선생님이 진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료타쌤을 비롯해 반 전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오미네 선생님을 바라봤다. 아오미네 선생님은 세상 진지한 얼굴을 했다.
“미도리마가 지금 자기 럭키아이템 부순 놈 잡는다고 검도부실에서 죽도 빌려왔대. 튀자.”
헉, 숨을 들이킨 료타쌤이 아오미네 선생님과 손살 같이 교실을 벗어났다. 죽도를 쥐고 조금 뒤늦게 나타난 미도리마 선생님 주먹 위로 퍼런 힘줄이 불쑥 솟는다. 그 뒤에 료타쌤의 흔적을 찾아 복도를 가로지른다. 미도리마 선생님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새롭게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료타쌤의 장난은 금세 잊어버렸고 반장은 침착하게 오늘 있을 신체검사와 체력검정에 대해 안내를 했다. 우리는 반장을 따라 침착하게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보건실로 향한다. 앞반 애들의 절반쯤 신장과 체중을 재는 것을 끝냈을 무렵에 도착한 우리는 복도에 서서 대기한다. 앞반 담임인 카가미 선생님이 도착한 우리 반을 확인하더니 두리번댄다.
“너희 담임은?”
“아오미네 선생님이랑 같이 미도리마 선생님께 죽도로 맞고 있을지도 몰라요.”
카가미 선생님이 뛰어나가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었다.
운동회 W. 령
[ 마지막으로 청팀의 응원 무대를 보겠습니다. ]
안내 방송을 하자 청팀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본부석 그늘에서 마이크를 끈 나는 “풉!” 하마터면 방송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청팀의 응원복 때문이었다. 흑팀은 나루토의 아카츠키 망토, 백팀은 마블 티셔츠, 흑팀은 위아래가 이어진 줄무늬 죄수복을 입었는데 청팀은 하얀 티셔츠에 짧은 흰 반바지, 그리고 쫑긋한 토끼 귀와 몽실몽실한 토끼 꼬리를 달고 있었다. 짝 짝 짝 짝 경쾌한 리듬이 울리고
All the single ladies, All the single ladies-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지자 줄을 맞춰 서 있던 건실한 토끼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도 꿋꿋하게 춤을 이어가는 그들은 현직 아이돌 뺨을 때리는 칼군무을 선보여 결국 구경꾼들의 입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If you don't, you'll be alone
And like a ghost,
하이라이트가 끝날 때쯤 검은 망토를 두르고 걸어오는 사람에 맞춰 바닷물이 갈리듯 댄서들이 옆으로 빠져나가고
I'll be gone-
가장 춤을 잘 추던 두 사람이 나와 그의 망토를 찢었다.
All the single ladies, All the single ladies, All the single ladies, All the single ladies
바로 이어지는 리듬을 따라 허리를 흔드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윤리 교사인 아오미네 선생님이었다. 청팀이 응원 연습을 극도로 숨기던 이유는 분명 이거 때문일 거다. 다리를 벌리고 서서 원을 그리며 튕기던 골반이 왼쪽으로 기울렷다 자연스레 오른쪽으로 가더니 다시 왼쪽으로 와 한쪽 무릎은 구부리며 내려앉은 아오미네 선생님의 동작에 비명과 환호가 같이 쏟아졌다. 경악에 가까운 비명은 아직 멋모르는 1학년에서 나왔고 짐승에 가까운 환호는 2, 3학년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즉, 짧은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선명하게 갈라진 허벅지 근육에 정신을 놓은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란 소리다.
If you liked it then you should have put a ring on it
피고 있던 오른쪽 다리가 매끄럽게 구부러져 무릎을 모아 앉은 아오미네 선생님의 엉덩이가 요염하게 움직이자 붙어있던 토끼 꼬리가 잔망스럽게 실룩였다.
아- 정말,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아니, 저 선생님들만 없었어도!
“아오미넷치!!” 흡사 광팬처럼 눈물을 흘린 체 광속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가정의 키세 선생님, “시끄럽습니다, 키세군.” 무표정해보이지만 농구를 지도할 때보다 더 진지하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체육의 쿠로코 선생님과 “.........” 벌거진 얼굴로 흘러내리는 코피를 막고 있는 영어의 카가미 선생님. 그리고 차마 시선을 마주치기도 무서운 VIP 좌석에 앉아 있는 아카시 이사장님까지. 불손한 마음이 절로 사그라들었다. 접하진 못한 이사장님을 제외한 다른 선생님들은 평소엔 좋은 선생님들이었으나 아오미네 선생님과 연관되면... 뭐랄까, 무섭다 할지, 답이 없다고 할지, 무튼, 평상시의 선생님들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조심하는 게 좋다.
Oh oh oh
마지막 음이 끝나는 동시에 쏟아지는 박수를 받은 아오미네 선생님은 부끄러운지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솔직히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햇빛에 그을린 피부 반대되는 흰색 반바지를 입고, 거기다 토끼 귀와 토끼 꼬리까지 단 체 비욘세의 춤을 추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어울리지 않을 텐데- 정말 안 어울리는데 아오미네 선생님이 섹시해보이는 건 왤까. 이 학교에 너무 물들었나.. 걱정 반, 나중에 사진부에서 팔 아오미네 선생님 사진을 살 기대 반으로 멍하니 있다 곧 정신을 차렸다.
[ 다음 순서는―]
*
“모브 선배, 보셨어요?”
“뭘?”
움직이기 귀찮아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펼치는 내 옆에 방송반 후배가 의자를 끌어다 앉아 매점에서 사 온 빵을 뜯었다.
“카가미 쌤 도시락.”
카가미 선생님의 5단 도시락과-그것도 찬합으로- 먹으면 바로 기절이라는 모모이 선생님의 도시락은 이미 학교 명물 중 하나였다. 참고로 모모이 선생님의 도시락은 내용물 조합과 맛은 혼돈의 카오스였으나 미술 선생님답게 색감만큼은 예뻤다.
“이번에는 10단이었어요.”
“.....설마 혼자 다 드시겠어.”
“아오미네 선생님과 함께 드신다고 했는데-”
“밋쨩이랑?! 겁나 부럽네.”
불쑥 끼어든 3학년 선배에게 후배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어.”
짧은 잡담을 나누다 “이거 마시고 오후도 힘내라. 그럼 난 간다.” 고문이 사줬다는 음료수를 나눠주고 유유히 사라지는 3학년 선배의 등을 보며 후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밋쨩은 아오미네 선생님을 말하는 거죠?”
“어. 미네 쌤 애칭이래”
“저어 여기 들어오려고 엄청 공부했거든요-”
“뭐, 우리 학교 편차 높으니깐.”
“근데 이 학교 이상해요.”
저 멀리서 “아오미넷치! 저랑 같이 점심 먹어요!!” 양손 가득 피자와 치킨 박스를 들고 카가미 선생님에게 가는 아오미네 선생님 뒤를 쫓는 키세 선생님과 “죄송합니다! 아오미네상이 말씀하신 마이쨩 도시락이에요!!” 뜻 모를 사과를 하며 도시락을 건네는 문학의 사쿠라이 선생님을 보고나니 차마 아니라 반박할 수가 없어 그저 조용히 소시지를 집어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해가 중앙에서 비스듬히 살짝 기울자 계주 다음으로 열기가 솟구치는 장애물 경주의 차례가 되었다. 학생들 시합이 끝나고 바로 교사들 시합이 이어졌다. 스타트 라인에는 호랑이 탈을 쓴 카가미 선생님, 곰 인형 옷을 입은 체 우마이봉을 먹고 있는 세계사 과목의 무라사키바라 선생님, 너구리의 와카마츠 음악 선생님, 오늘의 럭키 아이템으로 추정되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기린의 일본사를 담당하는 미도리마 선생님이 서 있었다. 모든 일에 인사를 다하는 미도리마 선생님의 태도는 본받아야 마땅하나 검은 선글라스의 기린이 열정적으로 달리는 모습이 멋있기보단 웃긴다는 사실엔 모두 동의를 할 것이다. 그 예로 대놓고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아오미네 선생님을 들 수 있다.
“아오미네!”
제일 먼저 도착해 쪽지를 고른 카가미 선생님이 그런 아오미네 선생님을 어깨에 들쳐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매달린 아오미네 선생님과 박력 있게 달려가는 카가미 선생님의 모습은 흡사 호랑이에게 납치된 토끼와도 같아, 모두에게 자이언트 토끼도 육식동물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 중간에 와카마츠 선생님에게 역전을 당할 뻔했지만 일 등으로 도착한 카가미 선생님이 내민 쪽지에 1학년 진행 요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선생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행 요원을 내려다보았다.
“맞는데?”
“주,주관적인 거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ㄴ,네!”
“뭔데. 잘생긴 사람 아냐?”
두 사람의 공방 길어지자 아직도 어깨에 들쳐진 아오미네 선생님이 물었고 진행 요원이 조심스레 답했다.
“...학교에서 가장 귀여운 사람이요.”
순간 정적이 내리 앉은 운동장에
“씨발.”
아오미네 선생님의 욕설이 크게 울렸다.
카가미 선생님의 옷자락을 꼬옥 쥔 체 등에 새빨간 얼굴을 묻은 아오미네 선생님이 귀엽지 않다니 진행 요원이 공평하지 못하다 생각하는 나와 달리, 옆에 있는 1학년 후배는 진행 요원에게 힘내라는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1등은 와카마츠 선생님으로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란 거다.”
그 응원이 효력이 있었는지 판정을 내리려는 진행 요원을 막은 건 미도리마 선생님이었다. 미도리마 선생님이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오미네가 매번 서류도 늦게 내고 책상도 지저분하지만”
“그게 뭔 상관읍?!”
“귀엽다는 사실엔 동의하는 것이다.”
“맞아, 미네칭 작아서 귀엽고-”
무라사키바라 선생님이 버럭하던 아오미네 선생님 입에 우마이봉을 쑥 넣었다. 미도리마 선생님에서 무라사키바라 선생님으로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하자 자연스레 남은 와카마츠 선생님에게 시선이 꽂혔다. 선생님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토마토처럼 붉은 얼굴로 외쳤다.
“아?! 나는 아오미네가 귀..귀,귀엽다던가 생각 한적 전혀 없다고!”
‘아아. 귀엽다고 생각하시구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수긍했다. 한편, 형성되는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의 편을 찾아 고개를 돌리던 진행 요원은 우연히 VIP 좌석에 앉은 이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는지 흠칫 몸을 떨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여 아오미네 선생님이 귀엽다는 사실을 인정한 그는 하얗게 불태운 눈동자로 어디론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1등이 되어 기쁜 카가미 선생님은 그제야 아오미네 선생님을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기쁨의 표현을 진하게 했다.
쪼오오옥-! 입술이 맞닿는 소리와 찰칵! 찰칵! 쿠로코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사진 찍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지만 이미 학교에 물든 2, 3학년들은 태연하게 다음 경기를 위해 움직였고 아직 학교, 아니 이 이상한 선생님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1학년만이 단체 멘붕이 와 멍하니 넋을 놓았다. 허나 그들도 1년이 지나면 우리처럼 될 거라 믿기에 나는 다음 차례의 안내 방송을 위해 마이크를 켰다.
졸업 W. 그늘
아, 겨울 냄새.
모브는 아침 등굣길에 나서자마자 그것을 맡았다. 코끝이 시리고 청량하게 입에 들어오는 향이 무척 생경했다. 벌써 추워졌구나, 그러고는 기대감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이 학교에 들어오고 3년째가 되면 누구라도 그럴 터이다. 교문을 향하는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한여름에는 민소매를 입고 무더위가 좀 가신 여름에는 소매가 딱 붙는 반팔을 입던 선생님은 이 시기가 되면 가디건을 걸친다. 가디건은 감색이거나, 흰색이나 회색 하늘색 같은 옅은 종류의 색이 많다. 막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을 보았을 때는, 190이 넘는 것 같은데다 조밀한 근육이 꽉 찬 몸에 소매를 덮는 가디건이라니 어불성설이라 느꼈는데 말이다. 멀리서 교문과, 학생들 틈새로 불쑥 튀어나온 장신의 선생님이 보였다.
아오미네 다이키는 단언컨데 가장 인기있는 선생님이다.
1학년들의 인식도 슬슬 그럴 것이다. 모브는 제가 1학년이었던 때를 떠올렸다. 학기 초에야 좀 미묘한 취급을 받겠지만, 종업식이 다가오는 이 시즌의 1학년은 이미 끝장났다고 봐야 옳다. 아오미네 선생님에게 홀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모브는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브가 클래스에 들어서자 역시 하반기 첫 가디건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였다. 192cm의 건장한 남자가, 햇빛에 탄 색깔의 손등을 반쯤 덮는 흰 가디건을 입은 것에 대해 감탄하리라곤, 입학할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모브는 웃었다가 입매를 손으로 눌렀다. 요새 웃는 때마다 아오미네 덕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완연한 겨울이 오고, 다시 벚꽃이 필 것이다.
모브는 문득,
……무척 고민해야 할 일이 생겼다.
올해 아오미네는 1학년의 담임이었다. 모브는 자기가 아는 3학년의 모두가 탄식을 흘렸음을 기억한다. 1학년 때는, 모브의 선배들도 그랬으며 모브의 후배들도 그랬다. 신입생들도 물론 막 입학했을 때에 그랬다. 1학년들은 대개 아오미네의 매력을 모른다. 아오미네가 얼마나 상냥하고 개구지며 인상적이고 세심한지. 모브 역시 아오미네와 많이 부닥치고 다른 학생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얻어듣고서야 아오미네를 좋아했더랬다.
아, 모브는 선생님이 무척 좋았더랬다.
생각해보면 제일 유순해 보이는 문학의 사쿠라이조차 아오미네를 무서워하지 않았음이, 기억에 남는다. 사쿠라이는 일견 무서워 보이는 아오미네의 외모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오미네는 고야를 싫어한다느니 학생때 어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에 거리낌은 없었다. 무서움은 아니었다, 확실히. 굳이 이름붙이자면 어려움이었겠지. 모브는 신발장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오미네가. 저와 동갑내기의 학생이었다면.
같이 등교하고 교문에서 복장으로 걸려서 운동장을 돌고 교실에 앉아 자는 아오미네를 구경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옷을 갈아입고 장난치고 같이 신발을 갈아신어 하교하고 내일 보자 하고 인사하는.
그랬다면, 신발장에 편지를 넣어두는 것으로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오미네는 학생이 아니지 않은가.
모브는 그냥 신발을 꺼내 실내화와 갈아신었다. 아, 오늘도 아오미네는 운동장 한켠에서 카가미와 농구를 하고 있었다.
모브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척 고민해야 할 일은 하루만에 방향성이 결정되었다. 고민이 고민이었던 이유조차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였으니 답이 없다. 모브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아니라 전화가 왔다.
"너 제정신이야?"
"제정신입니다."
"아니 미친 카가미쌤한테 맞아 죽으려고?"
"아 역시 맞겠지……?"
모브는 오늘도 둘이 농구하고 있더라, 하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친구는 목이 메인 것처럼 지껄였다.
"너 진짜야?"
결국 모브는 멀쩡히 잘만 걷던 하교길 중간에 쪼그려앉아 눈가를 부비적댄 것이다. 놀랍게도 진실로.
모브는 선생님이 무척이나 좋았다.
아오미네 다이키는 늘 장난스러웠다. 가끔 정색하는 척 하다가도 찌푸린 얼굴이 무서워 굳는 사람이 생기면 꼭 이상한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설레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생님 진짜 멋있지 않냐.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윤리 선생이면서 카가미와의 내기에 이기면 늘 담임을 맡은 반에게 음료수니 아이스크림이니를 사주게 하면서, 지면 입 싹 닫는 것도 귀엽기 그지 없다. 모브와 같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모브는 턱을 괴고 방과 후, 육상부의 코치는 커녕 체력단련 겸 달리러 나온 농구부 녀석들 사이에 끼여 공을 집어던지고 노는 아오미네와 공에 얻어맞고나서 아오미네를 쫓아 달리는 카가미를 보았다. 아쉽게도 결말이 뻔히 보이는 고민과 그 솔루션이었지만, 모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즉 어쩔 수가 없었다.
쓰고 있는 편지는 벌써 한 묶음의 편지지를 다 쓰고도 완성하지 못했다.
"졸업시즌이라고 벌써부터 선생님들 단추를 뺏아가는 녀석들이 있는데."
어느 날 오후의 윤리 시간에 아오미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학생들은 일제히 아오미네의 너덜너덜한 가디건 자락을 보았다. 모브는 저도 덤벼볼 걸 하고 생각했다.
"너희 전부 사내놈들이란 걸 잊지 말아라. 난 큰 가슴이 좋아."
에에에 하고 터지는 비판 속에서 아오미네는 호리키타 마이에 대해 한참을 지껄였다. 음, 가슴이라. 모브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카가미 타이가의 가슴을 떠올렸다. 크지, 크긴 하지, 사이즈적으로. 모브는 결국 축제 때 마이쨩의 가슴에 닿았었더라며 가슴에 담긴 꿈과 환상을 떠벌리는 아오미네를 사랑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네들에게야 퇴물이지만, 아오미네 다이키가 어렸을 적 호리키타 마이가 얼마나 설레는 사람이었겠는가를 떠올리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브가 얼마나 이 시간을 아끼던 상관 없이 속절없이 흘러, 때는 졸업식이었다.
가디건으로 감당이 안 될 무렵부터 아오미네는 두꺼운 파카를 입고 와 교실에서는 벗곤 했다. 그럼 다시 가디건 차림이었더랬지만, 파카에 가려지는 꼴이 아쉽다고 모브는 생각하곤 했다. 오늘은 가디건일까. 강당은 추울텐데 파카겠지. 모브는 눈을 굴렸고 그리고, 찾던 아오미네는 양복을 입고 서 있었다.
아오미네를 처음 보고, 그가 귀엽다고 생각하게 된 가장 처음 이후로, 늘 아오미네를 사랑스럽다 여겨왔지만 모브는 처음으로, 아 모브는 마지막 순간에마저 처음 느끼는 감탄을 부르는 아오미네에게 경외마저 느꼈다. 검은 양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옆에 카가미가 서있음에도 장난치지 않는 아오미네는 무척 예뻤다.
모브는 그제서야 거의 모든 순간 그가 예뻤음을 떠올렸다. 편지와 꽃과 마음을 준비해 놓고도 할지 말지를 고민했던 모브는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가장 예쁜 아오미네를 보고서야 결심을 굳혔다.
졸업장을 받고 가족에게 꽃을 받고 나서 모브는 아오미네를 찾았다. 단추는 모두 뜯기고 어찌된 영문인지 졸업하는 학생들보다 많은 꽃다발을 들고 카가미에게 투덜거리던 아오미네가 모브를 알아보았다. 이름도 불러주었다. 그 순간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만큼 기뻤지만, 모브는 그 이상을 바랐다.
"아오미네,"
선생님, 하고 늘 불렀지만 모브는 그 말을 꾹 삼켰다. 아오미네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졸업했다고 바로 선생님 빼먹기냐?"
"그런 거 아니에요. 계속 이렇게 부르고 싶었어요."
아오미네가 턱을 치켜들었다. 카가미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오미네가 받은 선물들과 꽃다발을 빼앗아 들었다. 자리를 피해주지는 않았지만, 모브는 상관없었다. 카가미가 모브를 쥐어패더라도 말이다.
"계속, 좋아했습니다."
모브는 크게 허리를 숙이며 편지와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카가미가 들고 있는 아오미네의 물건들이 이미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 다른 친구들의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오미네는 거의 바로 모브의 편지와 꽃다발을 받았다. 목소리를 가다듬지도 않고, 모브가 익히 짐작한 완결을 말했다.
"마음만 받으마."
"네."
"늦게 와서 단추도 없거든."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려 했다. 편지와 꽃다발을 한 쪽 팔에 낀 아오미네가 모브의 머리를 쓰다듬곤, 얼굴을 들도록 손짓으로 종용했다. 장난스레 웃고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와 모브는 따라 웃어버렸다. 아오미네는 웃는 낯으로 그러나 냉정하게 지껄였다.
"네가 다시 이 학교를 찾아와도 난 네 마음에 어떤 보답도 해주지 않을 거야."
"네."
"뭐, 가디건 입고 다닐 때 오면 단추 정도는 주마."
그랬던가. 모브는 크게 소리쳐 웃었다. 아오미네는 모브의 머리를 헤집고는 카가미와 함께 뒤돌아서 갔다. 모브는 눈물이 쏙 빠질만큼 웃은 다음, 뒤돌아섰다.
졸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