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님 생일 축전으로 드리는 승태대위입니다!
늦어서 죄송하고 야키님 다시 한 번 생일 축하드려요~!
대위를 처음만난 순간부터 승태는 마라톤에 선 주자였다. 조금도 눈에 닿지 않는 아테네를 향해 뛰는 주자이기도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목이 시큰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 주저하지 않았더라면 거짓말이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에 기도를 난잡하게 찢어 갈기는 것 같은 고통도 뒤따랐다. 보답 받지 못할 마음이며 어디서도 쉽게 환영받을 수 없는 바보 같은 감정이었다. 승태는 뙤약볕에 지글거리는 땅바닥 위로 붉은 발자국을 남겼던 그런 사랑을 했다.
승태의 뒤를 말없이 쫓아오고 있었던 이는 바로 대위였다.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댓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승태가 남긴 붉은 발자국을 하나하나 제 발밑에 새겨갔다. 그것을 겨우 깨달았을 때 그 길은 부드러운 잔디 위였으며 나무 그늘 아래였다. 보답 받지 못하더라도,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그는 대위를 사랑하는 것이 무척 기뻤다. 그럼에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던 욕심을 대위는 한껏 끌어안았다. 뒤늦게 알아버린 너무나도 포근한 사실에 그간 허비한 시간을 안타까워했던 승태는 바짝 다가선 봄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 너 좋아해.”
대위의 고백에 그날 승태는 엉엉 목 놓아 울었다.
ㅡ그에겐 비밀이 많다.
그날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날이었다. 오래도록 일방통행이었던 미련한 짝사랑이 끝난 지 열흘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승태는 PPT 자료 위로 고개를 떨어트리며 햇살이 촤르륵 떨어지는 바깥 날씨에 눈물을 훔쳤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에 날아든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승태에게까지 닿은 바람 때문에 뺨 언저리가 근질거렸다. 그는 볼펜 끝을 깨물며 중간고사가 코앞이라 데이트 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대위만 바쁘지 않았더라면 승태는 시험 따위는 뒤로 미룰 자신이 있었다. 물론 참담한 성적을 본 누나에게 등짝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각오하고 말이다. 승태의 칭얼거림은 오늘 오전부터 지속됐는데 함께 있던 친구가 그를 진득하게 놀려댔다. 솔로의 원한이 담긴 조롱이다, 하는 뜻을 전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시험공부에 매진하던 승태는 기어코 봉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대위야 뭐해?]
[알바중] 10여분이 지나고 대위에게 답장이 왔다. 1이 사라질 때까지 액정만 부릅뜨고 노려보던 승태의 얼굴로 방긋 웃음기가 올라왔다.
[오늘 잠깐 만날래?]
[그래]
다시금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봉한 승태는 끝이 지저분해진 볼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주체할 수 없이 들어찬 가슴속 설렘과 벅차오름만 아니었다면 사실 승태와 대위의 관계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대위는 승태의 밥을 챙겼고 승태는 대위의 안위를 걱정했다. 본래 친화력이 높은 승태는 대학 새내기 생활로 바빴으며 대위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구한 아르바이트로 정신이 없었던 탓일 수도 있다. 그래도 승태는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제게 애인이 생겼음을 주변사람들에게 들통나버렸다. 그 때문에 대위는 아웃팅을 걱정했지만, 승태는 아무래도 좋았다.
펜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킨 승태는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따듯한 물과 바디워시 거품으로 몸을 헹궈내고 도라지에 소금을 문지르는 것처럼 머리카락을 슥슥 감아냈다. 수건으로만 털어낸 머리는 금방 말라 공중으로 사방팔방 치솟았고 승태는 협탁 서랍에서 왁스를 끄집어내 머리를 바짝 올려 세웠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오늘도 잘생겨서 이만하면 대위의 남자친구감이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뒤에 얇은 가디건을 하나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선 승태는 대위랑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나왔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너무 들떠버렸다. 부끄러움에 뺨을 붉히고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던 그는 카페라도 가서 기다리자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대위는 저가 어디서 일하는지 정확히 짚어준 적이 없었다. 사실 몇 개나 아르바이트를 하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잠깐 일 하는 곳도 있었고 자택 아르바이트도 겸했다. 언젠가는 한 번 자퇴하고 직장을 알아보고 싶다고 넌지시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근래에 대위의 누나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학점을 포기하고 등록금을 벌고 있다. 대위는 정확히 제 누나의 어디가 좋지 않은지도 말해 준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가 바뀔 때도 역시 말해주지 않았다. 근래의 그가 자퇴나 휴학 얘기를 언뜻 하는 것 같지만 정확히 어쩌겠다는 말도 없었다. 대위에겐 비밀이 많다.
얕은 한숨을 삼키며 걸음걸이에 힘을 주던 승태는 적당한 카페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대위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톡을 남기고 빙수를 사먹을 예정이었다. 아마 대위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날이었을 것이다. 승태는 멀찍이 보이는 실루엣이 확실히 대위라고 생각했다.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을 버릇처럼 들인 n년간의 짝사랑이 빛을 발했다. 승태는 또 다시 두둥실 떠오르는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리고 번뜩 멈춰 섰다.
건물 틈으로 검은 쓰레기 봉지를 직직 끌고 나와 전봇대에 툭 내려놓고 사라지는 남성은 분명 대위였다. 분명 승태의 눈에는 대위가 틀림없었다. 승태는 제 눈을 두어 번 문질렀지만, 그 사이에 남겨진 인영은 여전히 하얀 앞치마에 까만 메이드 복을 입은 대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승태의 눈앞이 까맣게 점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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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에는 결국 승태가 대위 퇴근할때까지 잠복하는데 대위가 단골손님과 화기애애하게 나오는 거 보고 멘붕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며칠 잠적해가며 삽질하고 대위만나도 도망가고 하다가 결국 화난 대위가 승태를 붙들고 묻는 상황에 처했다가 어쩐지 울보가 된 승태가 또 눈물 줄줄 흘리면서 니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관여할 자격이 없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싶다 엉엉 손님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라 엉엉 나도 네 메이드복 입은 모습 가까이서 보고 싶다 엉엉 결국 메이드복 입힌 대위랑 신나게 침대를 부수고 행복해졌다고 합니다(엉망진창).
사실 중간에 한 번 갈아엎는 바람에 많이 늦어진데다가 넘 짧습니다...
대신 사랑을 듬뿍 담았어요 야키님 부디 받아주세요(절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