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버거님 생일축전으로 쓴 화청.
[화청] 비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휴대전화의 플립을 닫은 아오미네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메일에서 문자로 연락수단을 바꿨을 때,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확 멀어진 기분이 들어서였다. 뭐라고 답장을 해줘야할까. 잘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거짓말을 하는 거니까 싫고, 잘 해보라고 하기엔 배알이 꼴린다. 침대 시트에 등을 대고 누워 휴대전화 플립만 열었다, 닫았다 수차례를 반복하며 고민하던 끝에 아오미네는 손가락이 가는대로 문자를 작성하고 전송버튼을 눌러버린다. 보내고 나서야 괜히 그렇게 보냈나 하고 후회를 해보지만, 전송된 메시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침대 구석으로 던져버린 아오미네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숨을 푹 내쉬었다. 베개에 반사 된 뜨거운 입김은 얼굴을 넘어 뇌까지 뜨겁게 달구는 것 같았다. 아, 역시 괜히 보냈나.
*
카가미 타이가는 아오미네에게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일본인이지만 아버지의 일 때문에 미국에 산다며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카가미에게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일단은 모모이를 통해 억지로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는 둥, 하며 만든 ‘펜팔친구’였고, 분명 얼마 못가 연락이 두절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카가미 쪽에서 꽤나 끈질기게 연락을 해왔다. 게다가 영어로 쓴 글 밑에 일본어 해석까지 적어주는 정성까지 보였다. 그러면서 모모이의 등살에 못 이겨 결국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다보니 이래저래 2년이 훌쩍 넘었다. 그래도 그의 영어실력이 늘지 않은 것은 중간에 카가미가 영어를 그만두고 일본어로만 작성한 메일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모모이는 속상해하며 다른 펜팔친구를 사귀라고 했지만, 오히려 아오미네가 끈질기게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자신조차도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카가미에게 오는 메일에선 별로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적혀 있곤 했다. 새로 생긴 수제 버거 가게에서 치즈버거를 사먹었는데 파리가 나와 정말로 최악이었다느니, 학교 친구 제레미와 집에서 몰래 AV를 다운받아 보다가 히무로라는 자신의 형제에게 걸려 ‘컴퓨터가 바이러스 때문에 고장이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혼이 났다는 둥, 서핑을 하러 바다에 갔다가 다리가 하나 잘린 게를 발견했는데 그 게를 농구 스승인 알렉스의 머리 위에 올려놨다가 무진장 맞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 소소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다음 메일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곤 했는데, 그와 다르게 자신의 메일은 짧고 간결했다. 길어도 절대 열줄 이상 넘어간 적이 없었다. 그저 카가미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자신이 카가미에게 묻는 몇 가지 질문, 그 정도. 그래도 카가미는 아오미네만큼이나 그와 주고받는 메일을 매번 기대하는 것 같았다.
이건 그의 마음이 끌린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카가미는 자신만큼이나 농구를 좋아했다. 자신이 농구에게서 마음이 멀어질 때도 그는 여전히 농구를 좋아했다. 그가 하는 말로는 그가 농구를 잘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좋아하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러웠다. 정말 아무생각 없이 그저 좋아서 할 수 있는 농구를 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런 그와 같이 농구를 하게 된다면 자신도 즐거울 수 있을까. 그 기대감에 그가 언젠가 귀국할 날을 기다리곤 했는데, 그의 기대와 달리 귀국 한 뒤의 카가미는 농구에 큰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메일을 그만두고 번호를 교환해 문자를 주고받게 되면서 전보다 자주 연락할 순 있게 되었지만, 그는 전보다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아오미네 또한 연습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 그의 파트너였던 쿠로코와 연락이 두절 되었다.
그리고 카가미와 아오미네는 각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카가미 타이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날을 보내던 아오미네는 모모이의 말을 들었을 때 크게 놀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 농구부에 들어갔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모이는 펜팔친구인 그 카가미가 아니냐며, 만나보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었고 아오미네는 그녀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그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처음 그를 만나게 된 날, 그의 강렬한 붉은 머리카락과 눈빛에 시선을 빼앗기고 잠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었던 것 같다. 상상으로만 마주했던 카가미와의 조우는 꽤나 감격스러웠다고······말하면 조금 창피할진 몰라도 하여튼 그랬다. 아오미네는 애써 태연한 척 그와 마주하고 발목의 부상을 제외하고도 그의 형편없는 실력에 쓴 소리를 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분노하는 그의 시선이 따라붙을 때 아오미네는 조금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같다.
[요즘은 농구가 재밌어. 이 학교에 진학하길 잘 한 것 같아. 그리고 꼭 쓰러트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그러냐, 잘 됐네.]
카가미는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의에 불타올라 열심히 농구에 전념했다. 그러나 자신과의 첫 시합에서 카가미는 패배했고, 그 와중에도 문자를 해주는 게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한 동안 그의 문자는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아오미네는 처음으로 그에게 뭐라고 보낼 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모든 원인은 자신이건만 위로 같은 걸 해줘도 되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답지 않게 몇 십 분을 고민하다 기어코 한 줄을 적어내 보냈다.
[그럴 시간에 낫는 거에나 신경 쓰지 그래.]
나름 위로를 해주고 싶었건만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무신경한 말을 보냈던 것 같다.
*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아오미네의 최고이자 최악의 날이었던, 패배의 날. 아오미네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 시트 위에 몸을 뉘이고 잠을 잘라치면 카가미와의 시합이 떠오르며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가미는 아오미네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람이었다. 그와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앞으로 카가미와 계속 농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두근두근 요동치는 심장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나 기다렸던 사람이 카가미라 다행이었다.
그런 그 마음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모모이였다. 게다가 그를 전부터 호감보다 더 깊은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또한 그녀가 먼저 알아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정말 확신하는 눈빛으로 초롱초롱 아오미네를 바라보곤 했는데 그런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쿠로코를 통해 카가미를 만나는 아오미네를 답답하다는 듯 아오미네에게 호통을 쳤다.
“정말 미련한 것도 정도가 있지!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뭐를?”
“카가밍 말이야, 좋아하잖아.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연락했었고. 왜 비밀로 하는 거야?”
아무리 연애를 해보지 못해봤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해. 이러다가 다른 사람이 채가도 난 몰라. 하고 말하는 모모이에게 아오미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말 할 수 있겠냐. 그렇게나 심하게 대했는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잠겼다. 지금도 같이 농구도 하고 있고, 문자도 끊임없이 주고받고 있다.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게 미련한 건가. 아오미네는 생각에 잠겼다가 곧 복잡해진 머릿속을 깔끔하게 비우기로 했다. 그런 것을 고심하며 생각할만한 성격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보다 담담했던 것도 같다.
[나도.]
그리고 그렇게 보내버렸을 때, 아오미네는 멀어진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들어버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그는 아오미네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후회했다.
*
그로부터 며칠 동안 아오미네는 카가미에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과연 카가미가 그 성격을 다 받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가 좋다는데 별 수 있나. 아오미네는 설렁설렁 대꾸하며 ‘그녀’에 대한 자랑을 쉴 세 없이 읽었다. 카가미는 자신이 끼어들 구석 하나 남겨두지 않을 만큼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오히려 마음이 무뎌지는 것이 어쩌면 이게 당연하고 맞는 이치라고 생각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간혹 카가미는 아오미네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묻고는 했는데 아오미네는 가슴도 크고 굉장한 미녀에 부자라며 거짓부렁을 지껄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디 가서 죽은 줄 알았네. 여태 집에 처박혀서 뭐하냐?”
오래간만에 카가미가 쿠로코를 통해 아오미네를 찾아왔다. 간단히 농구를 하러 나가자는 거였는데, 아오미네는 정말 별 생각 없이 그를 따라 나갔다. 쿠로코는 미묘한 눈길로 카가미와 아오미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져버렸고, 아오미네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농구를 했다. 한바탕 땀을 쭉 빼고 벤치에 앉는데 카가미가 차가운 이온음료를 건넸고, 아오미네는 네가 웬일이냐는 기분 나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받아마셨다. 그리고 한 동안의 정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농구를 끝내고 나서는 이렇게 말이 오가지 않는다. 어색한 침묵보다는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말을 죽인 듯한, 조용함이랄까. 아오미네는 이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아 캔을 비우고 조용히 벤치 옆에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조용한 분위기를 깨고 아오미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아오미네는 움찔 어깨를 굳히며 카가미를 바라봤다.
카가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고 아오미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말 안했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오미네의 대답에 카가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기 꺼려하고, 하다못해 이름까지 알려주지 않았던 펜팔친구를 이런 식으로 알게 되다니. 카가미는 쿠로코에게 아오미네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를 정말 잘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번호를 유심히 보지 않아 몰랐는데, 저장되어 있는 번호라고 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카가미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음성 소리에 플립을 닫았고, 아오미네는 진동의 여운이 남은 손을 꽉 쥐며 카가미가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아오미네는 자신의 속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온 줄 알고 조금 놀랐다. 그건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는데, 카가미가 먼저 물어왔다. 아오미네는 다시 카가미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땅만 빤히 바라보는 카가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걸 왜 물어봐.”
“그야····.”
카가미는 말꼬리를 흐리며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붉힌 카가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니까.”
완전히 빨개진 얼굴을 한 카가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오미네는 그 순간 정말 멍청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 녀석 매저인가. 그렇게 심하게 대했는데 어째서 자신 같은 놈을 좋아할 수가 있지, 하는 뭐 그런 생각. 아오미네는 비실비실 새어나올 것 같은 웃음을 속으로 삼키고 뭐라고 대답해줄까 생각하다가 툭 내뱉었다.
“나도.”
이번에는 별로 후회되지 않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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끠ㅣ야ㅑ 치벜님 생일 진짜 축하드려요8ㅁ8ㅁ8ㅁ8ㅁ8!!!
화청화 느낌이지만 제 본진이 화청이니 화청이라 우김ㅎㅎㅎ
게다가 늦어서 죄성함미다ㅏ;; 똥글 드리는 것도 죄송한스8ㅁ8...
엄청난 슬럼프의 대쉬로 이런...ㅇ>-<...(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