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늦었지만 키요시 생일 기념으로 씁니다.
[목우] 영속
솨아아ㅡ. 비가 쏟아졌다. 하늘을 까맣게 매운 먹구름이 우르릉 울음을 내뱉었고, 빗물을 머금은 땅의 흙냄새를 좋아하는 키요시는 조금 느린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뒤에 휴가가 따라오고 있었다면 서두르라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잠시 동안의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키요시는 길을 가다 발견한 연약한 몸으로 비를 맞고 있는 꽃을 보고 쭈그려 앉아 빤히 바라보며 슬며시 웃어보였다. 그렇게나 비를 맞으면서도 꽃잎을 떨어트릴 생각을 않는다. 나도 너처럼 끈질기게 잡고 놓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上 꽃목.
금세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조금 더 걷고 싶어 서성대다가 아쉬움을 삼키고, 낡고 녹이 슬어 휘청대는 창살로 된 담을 넘어 오래 전 폐허가 된 성당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육중한 문이 끼이익 비명을 지르며 열리고 거미줄 쳐진 성당을 가로질러 제대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뚜벅, 뚜벅, 조용한 성당에 구둣굽 소리가 울리며 그가 다가갈 때마다 촛불이 하나씩 켜지며 불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제대에 도착했을 때, 제대에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고요히 잠이든 듯한, 여성의 시체와 마주했다.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그날 그녀의 모습처럼.
“어서 와, 키요시 텟페이.”
어둠속에서 스르륵 형체화 된 하나미야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러자 그의 입술 사이로 슬며시 내비치는 송곳니가 새하얗게 빛났다. 그는 검은 날개를 좌우로 펼치고는 키요시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턱을 붙잡았다. 아플 정도로 꽉 붙잡은 그는 장난스럽게 그의 입술을 핥았고, 키요시는 그에게서 나는 짙은 피 냄새에도 별 감흥 없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
“이런 장난은 재미없어, 하나미야.”
철컥ㅡ. 키요시의 손에 들린 총구가 하나미야의 심장을 향했다. 하나미야는 카핫, 호쾌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여성에게로 날아가 여성의 턱을 쥐고 매끄러운 여성의 턱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상당히 닮아있지, 그녀와. 일부러 골라 찾느라 고생했다고.”
“어째서?”
어째서 그녀와 닮은 여자를 데려와 죽였어? 키요시의 물음에 하나미야는 왈칵 인상을 구겼다. 여성의 머리가 하나미야의 손에 의해 떨어져나가고 작게 튄 피가 키요시의 뺨에 묻었다. 하나미야는 여성의 머리카락을 쥐고 집어던졌고 그 순간, 여성의 드레스에 불이 붙었다. 타닥타닥 검게 타오르며 여성의 몸체를 감싸는 연기에서 죄 없는 희생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난 정말 네 그 성격이 싫어.”하나미야의 짜증스런 말투에 “나도 마찬가지야, 하나미야.”하고 키요시가 대답했다.
“사실은 말야, 저 드레스 널 입혀보고 싶었어.”
“····그건 좀 악취미인걸.”
“그래서야! 너와 어울리지 않을 드레스니까!”
나는 네가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 키요시는 ‘변태’라는 단어가 입 안쪽에 맴돌았지만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키요시. 나는 언제쯤 널 먹을 수 있을까.”
“엑소시스트의 피는 너에게 독이라, 무리야.”
어깨를 으쓱해오는 키요시에게 다가온 하나미야는 목까지 갑갑하게 채운 정갈한 성직자 제복의 가슴께를 붙잡아 당겼다. 손가락으로 목부터 주욱 그어내려 깔끔하게 옷을 잘라내자, 남자답지 못하게 하얗고 깨끗한 키요시의 맨몸이 드러났다. 하나미야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그의 목 끝을 혀끝으로 핥아냈다.
“더러운 계집의 손에 놀아난 주제에 순진한 척 좀 하지 마, 재수 없으니까.”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좀 섭섭하지.”
“하.”
웃기지도 않네. 그 계집과 닮은 여자들을 수십이나 데려와 죽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주제에.
“그야, 닮았다고 해서 그녀인 건 아니잖아.”
철컥 다시 한 번 총을 고쳐 잡은 키요시는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키요시의 총구는 하나미야의 어깨를 향해 있었고 순식간에 어깨와 팔이 날아간 하나미야의 얼굴에 진득하게 피가 묻었다. 하나미야는 또 한 번 호쾌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렇다고 네 죄를 묻지 않는 건 아니야. 정해진 숫자 이상의 사람을 죽이면 규정 위반이니까.”
“그럼 날 죽이면 되잖아, 멍청아.”
“알잖아, 하나미야. 나는 너희들을 죽이지 못한다는 거.”
키요시는 하나미야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 그의 뺨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댔다. 천천히 맞물려오는 하나미야의 입술에선 인간의 피 냄새와 그의 피 냄새가 났다. 하나미야는 새롭게 만들어진 팔을 들어 그의 뒷머리를 콱 쥐어 당기고는 그의 혀를 깊게 빨아 당겼다. 쪽쪽, 소리를 내며 키요시와 하나미야의 혀와 타액이 섞이고 키요시의 턱을 타고 넘기지 못한 타액이 흘러내렸다. 뺨에 열이 오를 정도로 짙은 키스를 나누고 키요시가 먼저 입을 때어내자, 하나미야는 그대로 그를 바닥으로 넘어트려 그의 위를 타고 올랐다.
“순결해야 마땅할 엑소시스트가 뱀파이어의 손에 범해진다면, 너희들의 신이란 새끼가 통탄할 일이야, 그렇지?”
“딱히. 엑소시스트라고 해서 전부 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나는 신을 믿어 받들기 위해 엑소시스트가 된 것도 아냐.”
키요시는 자신의 목덜미를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콱콱 물어오는 하나미야의 뒷목을 살살 쓰다듬었다. 제복은 종잇장마냥 북북 찢어발겨지고 바지가 벗겨졌을 때 쯤, 키요시는 성당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천사를 보고 웃었다. 천사도 그를 보며 웃었다.
“하나미야, 이번엔 좀 아플 거야.”
하나미야는 아까와 같은 부분에 또 다른 총상을 입고 비명을 질렀다. 아까처럼 팔 전체가 날아가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총알의 성능 때문에 하나미야는 괴로운 듯 다른 팔로 총상을 입은 팔을 쥐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고 으드득 이를 갈았다.
“통증은 반나절이면 가라앉을 테니까.”
키요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며 하나미야를 향해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젠장, 망할 새끼. 다음번엔 반드시 범해주지.”
하나미야가 큭, 목을 긁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곧 어둠속으로 몸을 감추자, 키요시는 넝마가 된 제복을 대충 추슬렀다. 그가 사라져버린 후, 곧 성당은 아까보다 더 조용한 고요 속에 잠겼다. 하나미야, 너무 시끄러워. 키요시는 멍하니, 바닥을 나뒹구는 여성의 머리를 들어 올려 제단위에 놓았다. 부디 다음 생엔 행복하길. 여성에게 작게 목례를 한 키요시가 성당을 벗어나기 위해 문을 열자, 문 옆에 등을 대고 서있던 휴가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키요시를 바라봤다. 일처리가 늦는다고 잔소리를 하려던 휴가는 입을 다물고 그를 위아래로 훑더니 혀를 찼다.
“꼴이 그게 뭐냐, 멍청아.”
“음···애정표현····?”
“뭐래는 거야.”
휴가는 키요시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휘적휘적 먼저 빗속을 걸어 나갔다. 키요시는 자신의 뺨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고는 빗물에 손을 씻었다.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을 손에서 놓고 천천히 닫혀가는 문사이로 제단을 바라봤다. 자신이 올려놓은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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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취향을 듬뿍 담은 글을 쓴 기분입니다//
키요시 생일 정말 축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