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요시 생일 축전 이어서-.
간혹 키요시는 가위에 눌릴 때가 있었다. 자주 눌리는 것도 아니고,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 내일은 뭘 해야 할까 하고 멍하니 일상을 보내던 중에 갑작스럽게 가위에 눌렸다. 게다가 장소와 자세를 불문하고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을 때에도 그랬다. 가위에 눌렸을 때 괴로운 것은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속으로는 수만 가지의 말을 쏟아내고도 남았지만 딱 붙어버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나 괴롭게 느껴졌던 건 주로 그의 몸을 짓누르는 존재가 자신의 반생을 걸쳐 사랑한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下 자목.
그의 잠자리에 나타난 그녀는 오늘도 예뻤다. 블론드 머리카락이 땅에 질질 끌릴 만큼 길었는데 그래서 끝이 까맣게 때가 탔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새하얀 드레스는 절반 정도는 불에 타버린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티끌하나 묻지 않을 만큼 새하얗고 깨끗했다. 그래서 더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그녀는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얼굴로 눈을 접어 웃으며 키요시의 배에 앉아 그를 내려다봤다.
“찾았어?”
그녀가 물었다. 키요시는 전과 똑같이 눈만 깜빡거렸다.
“못 찾았구나.”
키요시는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망령이다. 살아있을 때조차도 자신의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을 빼앗겨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녀는 죽어서도 자신을 옭아매 놓아주지 않았다.
“하나미야는 아니야.”
응, 알고 있어.
“휴가나 무라사키바라도 아니고.”
알고 있다니까. 키요시는 여전히 눈만 깜빡 거렸고, 그녀는 조용히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그를 가득 담은 눈동자에는 순식간에 무언가 욕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붉은 시선에서 짙은 피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너는 나만의 것이었어.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먹히면 안 돼.”
그래서 엑소시스트가 되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 다른 자들이 자신의 피를 탐내지 못하게 하려고. 그리고 그녀와 같은 냄새가 나는 뱀파이어들을 죽일 수 없게 되었다. 엑소시스트가 되어서 뱀파이어 하나 죽이지 못하는 겁쟁이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죽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무섭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제 주변에 몇 명 없었다.
“그를 찾아내면 어떻게 할 거야? 뱀파이어는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그러게. 찾아내면 어떻게 해야 할까. 키요시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는 그녀가 죽은 뒤, 일주일은 휴가가 억지로 먹였던 물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을 정도로 슬펐다. 삼 개월은 방안에 처박혀 죽은 듯이 생활할 정도로 그녀의 죽음을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그랬던 자신이라면 분명 그녀를 죽인 자를 찾아내 복수해주겠다는 다짐이라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저 살아가려는 이유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뱀파이어였으면 좋겠지, 텟페이?”
뱀파이어면 죽일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너는 평생 복수를 핑계로 그를 따라다니며 살아갈 이유를 새기겠지. 그녀가 아픈 곳을 거리낌 없이 찌르며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상체를 숙여 키요시의 이마에 짧게 키스를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에 또 봐.’ 하는 목소리가 허공으로 사라지고, 키요시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으며 훅, 숨을 내뱉었다.
“또 그 여자 꿈 꿨나보네.”
어느새 키요시와 등을 맞대 앉은 무라사키바라가 꽃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거리며 물었다. 그의 날개가 거치적거려 키요시는 몸을 돌려 앉고 무라사키바라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꽃은 왜 먹고 있어?”
“음···달 것 같아서 먹었는데···.”
“달아?”
“아니.”
그가 키요시를 돌아보자 꽃냄새가 풍겼다. 쓰거나 떫지 않을까. 키요시는 멍한 얼굴로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였다. 무라사키바라는 그의 눌린 뒤통수와 뻗친 앞머리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뻗친 머리카락을 꾹꾹 쓰다듬었다. 그래도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는 머리카락에 씻고 나온다는 듯 키요시가 그의 손을 제지하며 욕실로 쏙 들어가 버린다. 땀에 푹 젖어 살결에 달라붙은 셔츠를 벗어던지고, 조금 미지근하게 튼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으며 샴푸 통을 집어 들었다. 아까 무라사키바라가 먹고 있던 꽃향기가 나는 샴푸였다.
“같이 씻을까?”
“농담 말고, 얌전히 있어.”
욕실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무라사키바라의 목소리에 키요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부스럭거리며 욕실 앞에서 사라진 무라사키바라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약간의 치즈와 잼,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 몇 쪼가리 밖에 없는 냉장고를 내려다보던 무라사키바라는 허리를 펴곤 냉장고 문을 닫았다. 키요시는 인간이지만 뱀파이어인 자신보다 더 먹을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낙으로 저리 사는 걸까. 무라사키바라는 솨아아 물소리가 들려오는 욕실을 흘깃 쳐다본 후, 낡아서 삐걱거리는 침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요 며칠 내내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슨 생각해?”
욕실을 나온 키요시는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무라사키바라에게 물었다. 무라사키바라는 키요시의 팔목을 붙잡아 당겨 품안에 가두고 그의 머리카락에 코를 박았다. 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던 무라사키바라는 키요시와 함께 그대로 침대 위에 풀썩 몸을 뉘였다.
“키요시한테도 꽃냄새가 나.”
“꽃향기가 나는 샴푸를 써서 그래.”
“·····나 배고파, 키요시.”
자신의 입술을 혀끝으로 핥아내며 그의 목덜미로 입술을 묻은 무라사키바라가 웅얼웅얼 말했다. 키요시는 푹, 한숨을 내쉬며 몸을 틀고 그의 머리를 토닥토닥 손바닥으로 얕게 두드렸다.
“나는 안 된다니까, 무라사키바라.”
“·····왜 엑소시스트 따위가 된 거야.”
엑소시스트가 되기 전엔 조금이라도 먹게 해줬으면서, 하고 투덜대는 무라사키바라는 그의 가슴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럼 무라사키바라, 나보다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정말?”
“이번엔 더 맛있을 거야.”
굉장히 젊은 남자라고 들었거든. 키요시가 몸을 일으켜 셔츠를 꿰어 입자, 무라사키바라는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먼저 집밖으로 나서는 그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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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온다..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