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글렉트(육아포기) 희생자 키세와 직장인 아오미네가 나옵니다.
황청이라 썼는데 청황 같기도 하다.
To. 해마님
[황청] 의지
편의점의 삼각 김밥과 도시락의 종류가 다른 것은 천만다행인일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참치 마요’였어도 매일매일 그것만 먹었다간 신물이 나버릴게 뻔했다. 그것은 제일 좋아하는 ‘햄 김치 덮밥’도시락이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그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봐도 좋다. 여러 종류나 되는 편의점의 모든 삼각 김밥과 도시락, 거기에 컵라면까지 섭렵한 키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인사다. 잘생겼지, 거기에 매일 삼각 김밥 같은 것만 먹는 주제에 몸도 좋지, 게다가 성격마저 사근사근해서 여자 알바생들의 외사랑 상대 1순위, 남자 알바생들의 질투 상대 1순위로 당당히 등극했다. 알바생들 중에서도 꽤나 적극적으로 다가오려고 노력하는 여알바생이 그 사실을 농담처럼 전했을 때, 키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농담일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는 어딜 가서도 그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언제나 그런 타이틀이 제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쁘진 않다. 자신을 좋아해주고, 질투를 할 만큼 자신을 인정해주는 일은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번거로움은 영 반갑지 않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만해도 여자친구를 끼고 지냈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고백을 받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번호를 따였다. 여자 친구가 없을 때 귀찮게 연락을 하는 여자들 때문에라도 항상 여자 친구를 만들어 지냈다. 그러나 어머니가 떠난 뒤로는 ‘여자’와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바란 것도 아닌데 밥을 해주겠다며 나서는 것도 싫고, 그것을 빌미로 집안에 발을 들이려는 것도 싫었다. 어머니가 나간 그날 이후로 청소 한 번, 정리 한 번 한 적 없던 집이라도 자신의 안식처였고, 그곳을 침범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용납할 수 없었다. 매달 넉넉하게 붙여지는 돈을 가지고도 제 스스로 밥을 해먹어 보려고 한 적도 없고, 어떻게든 아끼고 아껴서 모았다. 돈을 좋아했던 어머니가 언젠가 돌아오면, 이만큼 돈을 아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다시 붙잡아 놓고 싶었다.
일 년째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한 어머니 생각에 삼각 김밥을 툭 떨어트렸다. 그를 대신해 시커먼 손 하나가 나타나 김밥을 주워들고 곧장 카운터로 향했다. 키세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앗! 그거 제가 먼저 찜한 겁니다!”
“뭐래는 거야.”
나른하게 퍼지는 낮은 목소리에 키세는 그제야 상대를 살폈다. 자신의 키가 적지 않은 키인데 그 보다 더 크다. 운동이라도 한 사람마냥 몸도 다부지고, 인상은 길가에 붙은 현상수배지에 나올 법할 정도로 험상궂다.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가 마른 침을 한 번 꿀떡 삼켰다. 저건 포기할 수 없다. 매번 앞서 온 누군가가 빠르게 채가는 참치 마요니까!
“그거 주십셔.”
“딴 거 집어라, 꼬맹아.”
“누, 누가 꼬맹이라는 거예요?”
파리를 쫓듯이 손을 휘휘 저어보이는 태도가 너무 건방져서 키세는 기가 찼다. 아무리 자신이 아직 교복을 입는 학생이라지만 벌써 키가 190조금 안 되는 사람한테 꼬맹이 소리는 조금 아닌 것 같았다. 키세는 사나운 맹수마냥 눈을 부릅뜨고 경고하는 사내에게 결국 기 싸움에서 밀리고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며 다른 삼각 김밥을 골랐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선 알바생은 몰래 폐기로 남은 다른 삼각 김밥을 얹어줬다. 참치 마요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공짜를 얻었으니, 이만하면 나름 괜찮다. 편의점을 나와 빠르게 집으로 향하는데 골목을 돌면서부터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딱히 건들건들하게 걸어가는 것도 아닌데, 동네 양아치나 건달 마냥 사람들이 슬슬 눈을 돌리고 피하는 꼴이 우습다.
키세는 자신의 아파트가 보이면서 이제 갈라지겠구나,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 중얼거렸다. 그런데 자신보다 먼저 앞서가던 남자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키세는 순식간에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하는데 마치 자신의 참치 마요 삼각 김밥을 가로챈 게 괘씸해 복수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따라온 것 같지 않은가. 키세는 일부러 짝수 층용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획 돌렸다.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은 태도다. 키세는 8층에서 내려 계단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7층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꽤나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방법 덕분에 더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
“가지가지 한다?”
“····그쪽 따라온 거 아닙니다만.”
같은 층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옆집. 남자의 비아냥거림에 얼굴을 붉힌 키세는 얼른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돌려 문을 땄다.
“누가 그거가지고 뭐래? 너 옆집인 건,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제 집으로 쏙 들어가는 남자가 잔망스러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
옆집에 살고 있는 아오미네는 전 여자 친구가 떠난 집을 꿰차고 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옆집 여자가 굉장히 미인에 가슴도 크고 허리도 잘록한 글래머였던 것으로 보아 굉장히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키세의 눈으로 봤을 땐 그저 야근에 찌든 일반적인 직장인이다. 딱히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지도 않고. 전에 봤던 어머니의 애인만 해도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 삼류 호스트 주제에 옷만큼은 몇 백 씩 들여 사 입었건만, 아오미네는 셔츠에 정장바지 아니면 거의 추리닝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물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첫인상이 와장창 무너져버린 이상, 앞으로는 쭉 말 섞고 싶지 않은 그런 류의 사람으로 분류해 놨다. 그렇게 지내기를 서너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키세는 그가 좋아하는 도시락이 보이면 미리 사다뒀다 건네고, 가끔은 그가 해주는 밥을 먹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변화된 관계에 의문을 표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스스로도 많이 당황스러워하던 중이다.
“안 먹냐?”
“아, 아뇨. 먹을 겁니다.”
남이 기껏 차려준 음식을 앞에 두고 깨작거렸다가 한 소리를 들을 뻔 했다. 키세는 얼른 숟가락을 들고 국을 한 번 퍼먹으며 아오미네에게 힐끗 시선을 던졌다. 다시는 말도 섞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부터 이상하게 자주 마주쳤다. 아파트 입구에서라던가, 편의점에서라던가, 한 달에 한 번 스스로 정한 외식 날의 김밥 집에서라던가. 그러면서 간혹 자신에게 삼각 김밥 두어 개를 툭 건네면서 먹어라, 하고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아오미네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던 때부터였다. 그와 같이 대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서로를 챙기고. 싫은 것은 아니다. 친구 녀석들이 혼자 살고 싶다며 독립과 가출을 선언할 때마다 이해할 수 없어, 대꾸도 없이 웃기만 하던 스스로가 지쳐가던 것을 느끼고 있을 때였으니까.
아오미네와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가까워졌을 때, 키세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오미네에게 일절 꺼내본 적이 없다. 식기에 먼지가 쌓이고, 남은 음식들이 썩어가며 냄새를 풍기고, 자신의 방을 제외하면 완전히 쓰레기장과 다름없는 집안 꼴을 보고도 아오미네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던 것도 같다. 절대로 자신의 영역에 멋대로 침범하려는 오지랖을 부리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왜 저한테 잘해줍니까? 나 불쌍해요?” 묻는 말에
“까불지 마라.”하고 대답해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그렇게 강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 진탕 술을 먹고 들어와 제 집 문도 못 열고 복도에 몸을 웅크려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에게서는 술 냄새와 같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애인이 떠나가던 날의 어머니처럼. 그의 어깨를 껴안고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복도 한 켠을 가로 막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키세도 묻지 않았다. 뒷목을 찬찬히 토닥여주다 보면 어느 순간 아오미네의 숨소리가 색색, 하고 바뀐다. 아마 여자일이겠지. 이 집의 본래 주인인. 원채 약한 모습 같은 건 내비치지 않는 사람인지라 어쩌면 그 또한 자신이 의지할 곳이 필요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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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님의 리퀘로 연하X연상 황청을 쓰는데 엄청난 똥을 제작하였다
해마님...스미마셍ㅇ...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