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푸딩님 썰을 인용하여 썼던 민톰글을
익명님의 요청으로 짧게 더 써봤습니다^ㅁ^)9
— Minho X Thomas : 애플퀘사디아 에필로그
건포도를 싫어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예닐곱 살쯤 되었을 무렵, 찬장을 뒤져 나온 오래된 건포도를 씹어 먹고 배탈이 났던 여름날이었던 것도 같다. 한눈에 보기에도 새하얗게 곰팡이가 피어있었지만,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몰랐다. 크게 한 번 탈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간 이후에도 파닉스조차 제대로 때지 못해 포장지의 글자 하나 읽지 못해서 수상쩍다 싶은 건 뜯어서 눈으로 살피고 냄새를 맡아보는 정도로 구별했다. 그 외에는 배가 고프면 뭐든 입안에 넣고 보았던 짐승만도 못한 어린 시절, 그는 자신을 등진 어머니의 육아포기 희생자였다. 그를 주의 깊게 살폈던 것은 샬럿만큼이나 오지랖이 넓었던 이웃집의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몇 번은 아동복지기관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던 그의 어머니는 괴성을 지르며 사람들을 쫓아내고 엉엉 울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알코올과 마약에 빠져 담즙을 토해내고 곧 이어 피를 쏟아내며 그렇게 죽어갔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는 너무 어렸던, 남들보다 조금 뒤떨어졌던 토마스로서는 잘 모르겠다.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주변과는 벽을 치고,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면서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탓에 남보다 더 몰랐다. 어머니가 약에 취해 손목을 그어버리고 돌아가신 뒤, 그대로 보육원으로 보내진 그는 보육교사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에 적응해나갔다.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떠날 때까지도 그는 정말 평범할 정도로 반듯하게 자랐다. 그렇게 본래도 혼자였던 그가 소속감에서 벗어나 완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부터 그의 자해가 시작 되었다.
그는 쭈욱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보육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리얼 속에 어쩌다가 굴러들어온 자그마한 돌멩이마냥. 처음 손목을 그었을 때, 정말로 죽을 생각이었다. 확실하게 죽으려면 고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던가, 목을 매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런데 어쩐지 어머니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고집을 부린 것도 있다. 그렇게 피만 슬쩍 날 정도로 얕게 긋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습관적이 되었을 때, 민호를 만났다. 민호는 피곤에 찌든 샐러리맨 같은 얼굴을 하면서 욕을 한 번 씹어 뱉었다.
“씨발.”
처음엔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긴 상념에서 빠져나왔을 때 토마스는 자신이 죽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만큼은 틀림없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민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죽음을 바라왔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없다고만 생각했다. 죽으면 끝이지.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축 늘어진 몸 옆으로 멀뚱히 자신이 서있었을 뿐이다. 민호는 죽어가는 토마스를 쭉 지켜만 봤다. 아무 말 없이. 측은함이 담긴 표정이라든가 자그마한 동정심 하나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심장이 정지했을 때, 토마스가 새롭게 눈을 떴을 때 그제야 민호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상냥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
“상냥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렇지.”
민호의 손목에 붙들린 토마스가 조금 떨었다.
“가자.”
“어딜 가는데?”
토마스의 손목을 붙든 민호의 손도 조금 떨렸다. 묵직하게 힘이 들어간 손으로 푸른 힘줄이 솟는다.
“네가 살던 세상보다 더 지옥 같은 세상.”
“·····그곳에 민호도 있어?”
민호는 대답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토마스를 끌어당기는 민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을 지나쳐 욕실을 빠져나오면서 토마스는 붉은 물에 눈을 감은 창백한 자신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그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세상에 민호가 있다면 나는.
그걸로 됐어.